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밀 문학 (문단 편집) ===== 역사적 배경 ===== 14세기 전반, 후기 판디아 왕조가 말기에 이르러 무너지고, [[델리 술탄 왕조|델리 술탄국]]과 [[바흐마니 술탄국]] 등 새로이 인도 북부·중부에 자리를 잡은 이슬람계 세력은 동남인도 촐라와 판디아의 고토로까지 세력을 뻗치며 약탈 원정을 왔다. 이때 [[호이살라 왕국]]을 계승한 힌두계 세력 [[비자야나가르 제국]](1336–1646)이 새로이 남인도를 통합하고, 힌두 문화를 지켜내며 이슬람 세력의 남하에 맞섰다. 비자야나가르는 남인도 서북부의 [[칸나다어]]권을 중심으로 하는 칸나다계 국가였지만, 남인도 동남부의 타밀어권, 동북부의 [[텔루구어]]권, 서남부의 [[말라얄람어]]권도 지배하에 두고 남인도 전체를 통합하였다.[* 동남인도 타밀어권을 중심으로 하는 전 시대의 타밀 국가들은 말라얄람어권(이 지역 역시 고대에는 [[체라 왕조]]의 영역으로 타밀 지역에 속했다)이나 텔루구어권(가령 중세에는 촐라의 방계 세력들이 통치한 적도 있음)도 세력권에 둔 경우가 많았지만, 칸나다어권에는 고대의 [[카담바 왕조]] 이래 꾸준히 [[찰루키아 왕조]], [[라슈트라쿠타 왕조]] 등 칸나다계 세력이 독자 세력권을 구축하고 있어 타밀계 세력이 오래 진출하지 못했다. 후기 촐라–판디아 시대 칸나다어권에는 [[서찰루키아 왕조]], 호이살라 왕국 등이 있었다.] 16세기 전반 타밀나두 지역은 비자야나가르 제국 휘하 세 개의 [[나야크]](태수)령으로 분할되어 통치되고 있었다.[* 역사에 특별한 흥미가 있는 사람을 위해 부연하면, 엄밀히 말해 비자야나가르 세력에 마두라이를 잃고 밀려난 판디아의 잔당들이 타밀나두 서남부 텐가시(தென்காசி, Tenkasi)를 수도로 [[티루넬웰리]] 등지를 지배하며 약소하나마 세력을 유지하기는 했다. 이를 텐가시 판디아 왕국이라고 하며, 15세기 초부터 17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이 정권의 정확한 소멸 시점은 17세기라는 것 정도 외에는 불명확하다.] 이 가운데 둘은 크리슈나데와라야(Kṛṣṇadevarāya, 재위 1509–1529) 황제가 임명한 센지(செஞ்சி) 나야크령(1509–1649)과 마두라이 나야크령(1529–1736)이었고, 남은 하나는 크리슈나데와라야를 계승한 아츠유타데와라야(Acyutadēvarāya, 재위 1529–1542) 황제가 임명한 [[탄자우르]] 나야크령(1532–1673)이었다. 16세기 중반, 비자야나가르 제국이 데칸의 이슬람 세력과 벌인 [[탈리코타 전투]](1565)에서 대패하여 급속도로 약화되자, 데칸의 술탄들이 비자야나가르 영역으로 남하하기 시작했고, 비자야나가르 지방관들이 중앙에 바치는 공납을 끊고 독립하기도 했다. 이때 센지와 마두라이 나야크는 제국에서 독립하여 각각 센지 나야크국, 마두라이 나야크국이 되었으며, 탄자우르 나야크는 한동안 여전히 비자야나가르 제국에 명목상으로나마 충성하였다. 이로 인해 탄자우르와 센지–마두라이 간 대립이 시작되었고, 탄자우르와 센지–마두라이가 대립 세력으로 개입한 비자야나가르의 내전 과정에서 벌어진 토푸르(Tōppūr, தோப்பூர்) 전투(1616–1617)에서는 정당한 황제 라마데와라야(Rāmadēvarāya, 재위 1617–1632)와 그를 지지한 탄자우르 나야크가 승리하였으나 나야크 간 분열은 확고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